마이크로스코프 RPG는 기존의 RPG와는 매우 상이하며 인디 색채가 강한 룰이다. 이 룰은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룰이다. 설명만 듣고는 이게 뭘까, 싶겠지만 한 번 플레이를 해보고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마스터가 없으며, 모두가 역사에 같은 권리를 지닌, 일종의 공동창작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서 어떤 선형의 역사가 있는데, 이 역사의 띠를 보면 큼직큼직한 것은 그냥 멀리서 봐도 잘 보이지만, 여기서 더 자세한 세부사항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현미경(Microscope)을 들여다보는거다. 여기서 큼직큼직한 것은 '시대'이고, 약간 작달만해서 확대해서 봐야 수월한 것들은 '사건'과 '장면'이 된다. 다른건 모르겠고, 이름 한 번 참 잘지었다.
이런 역사의 줄기들은 인덱스 카드에 기입되는데, 플레이 끝나고 나서 만들어진 장대한 역사의 흐름을 보자면 퍽 뿌듯해진다.
▲인덱스 카드. 정보 카드, 또는 색인 카드라고 알려진 그거다.
▲ 실제 플레이는 이런 느낌으로 진행된다
어쨌든. 이 룰의 특징은 대략 네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는데, 그 첫번째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온도차' 이다.
전우주적으로 보자면 그리 긴 편도 아닌 인류역사는 그 길이에 비해서 격정의 연속이었다. 동시에 변화도 많았는데, 당장 구석기 시대와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예를 들어보자. 이 차이는 극명하고, 만약 그 당시의 원시인이 현대의 대도시로 온다면, 현대의 놀라운 여러 기술들을 마법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 어쩌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포드 프리펙트 그러했듯, 자동차를 처음 보고, 자동차와 악수하려고 손을 뻗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있겠지. 사실, 이 사이의 무언가가 등장해서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기엔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이는 마이크로스코프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음은 검과 갑옷의 시대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초능력이나 마법이 등장할 수도 있고, SF적 요소가 등장할 수도 있으며, 좀비라든지 거대괴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 한 인물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처음엔 평화주의적이었던 인물이 갑자기 나중에 가서는 폭력적이게 되어서는 완전히 광인이 될 수 있다. 좌우간,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천상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원인, 즉 사이와 사이를 채우는 것은 전적으로 플레이어들의 몫이다.
(이는 Explore에서 '넓은 주제를 갖고 시작하는 것과 이것저것 산만하게 흩뜨러진 것은 다르다' 같은 식으로 잠깐 다루었던 부분인데… 일단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특징 두 번째는, 역사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있고, 그건 어떻게 해도 못바꾼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날고 기었던, 강성했던 제국이라 할지언정 '제국의 멸망' 이라는 미래가 정해져있다면, 어떻게 해도 그 미래는 바꾸지 못한다. 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참수당해 죽는다는 미래가 등장해버리면 손쓸 수도 없는 거다. 한편, 보통 사람들은 평화롭고 목가적인 시골집의 풍경을 메테오와 얼음폭풍으로 싸그리 엎어버리는 잔인한 짓을 주저할 수 있겠지만(오히려 좋아할 수도?), 이는 결코 '트롤링'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짓거리는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크고 변화무쌍한 역사가, 작고 정적인 역사보다 훨씬 재밌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 사이에 대체 무엇이 있었길래 이렇게 됐을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는 특징은, 과거를 조명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하잘 것 없어보이는 미래라고 해도 그 과정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다는 장점에 의해 상쇄된다.
특징 세 번째, 논의 불가능이다.
이 룰은 기본적으로 '합의가 게임을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만든다' 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처음에 허용과 금지 목록을 정함으로서, 이건 절대 등장시키면 안된다, 이런게 등장하면 좋겠다. 라는 요구에 대한 언질을 마치고 난 다음부터는 서로간의 논의가 원천봉쇄되어있다. '내가 그거 이렇게 등장시키려고 했는데' 하는 아쉬움의 표현조차 안된다. 이런 특징이, 각자가 스토리텔링에 대한 강한 욕구와 주관이 있어서, 각자가 개인적으로 썰을 풀고, 그것들을 한데 섞어 완성시킨다는, 이 룰의 가장 매력적인 장점을 만든다.
그리고, 특징 네 번째는, 장점이라면 장점이지만, >>> 아무 때고 끝내도 된다 <<<
일종의 에필로그 격의 유산 탐사로 끝내라는 지시가 적혀있긴 하지만, 기실 안따라도 별 상관은 없다. 역사책을 언제 덮든, 그것은 플레이어들 재량에 따라 달려있다. 이는 또 반대로 말해서, 언제 다시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말도 된다. 정말 아름다운 역사가 만들어졌다면, 그래서 한 번 하고 버리기 아깝다면, 나중에 다시 책을 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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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 마이크로스코프 플레이 결과를 캠페인의 배경설정에 대한 초석으로 삼는다는 사람이 꽤 있는데, 그건 나도 아직 안해봐서 모르겠다. 어쩌면 재밌을지도.
https://www.youtube.com/watch?v=pH2TKReYFS4
실제 플레이 영상이다. 영문이지만.
현재(2016.05.27) 시점에서 익스플로어를 완독… 까진 아닌데 얼추 읽어는 봤다. 많은 Seeds와 Oracles 가 제공되어있고, 막연할 수 있는 플레이 설정 단계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게다가 룰의 다른 설정 세 가지가 있다(Chronicle, Echo, Union). 뭐, 솔직히 Chronicle은 그냥 보통 플레이랑 거의 다를 바가 없다는게 내 평가지만… 그래도 그걸 제외해도 두 개나 있다! 살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다음에 충분히 Echo와 Union을 즐겨본 뒤에 Explore를 리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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